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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견(?)

 

저희 한신대학교 신학과는 불의와 폭력에 맞서 싸운 자랑스러운 전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5.18 민중항쟁 때 '누군가 병든 역사를 위해 십자가를 질 때 비로소 생명은 참답게 부활한다’라는 말씀과 함께 광주로 내려가서 도청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으신 류동운(한신신학79학번) 열사를 기리는 문화제를 매년 5월에 열고 있습니다.

바로 몇일 전입니다. 4월 11일 저녁이었습니다.

이번 5월에는 류동운 열사를 정체성으로 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 수 없을까 하고 학회원들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토론하고 있는데, 한 학우가 말했습니다.

"어? 우리가 모르는 분이 왜 이렇게 많냐?"

"뭔데? 봐봐."

그 학우가 보내 준 이미지는 한신대학교 교정 내의 한 추모비였고, 그것이 저희와 한신대 신학과 85학번 '곽현정' 선배님과의 첫 만남, 아니, 발견(?)이었습니다.

 

1123.jpg

한신대 학생회관 맞은편에 위치한 추모비

 

 

2. '존재'와의 만남

 

우리는 부랴부랴 곽현정 선배님에 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선배님의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민주로드)

 

1966년 10월 24일 전남 목포 출생

1982년            수유여중 졸업

1985년 2월 11일  풍문여자등학교 졸업

1985년            한신대학교 신학과 입학

1986년 11월 30일 건국대 애학투련 항쟁 참여

1988년 4월 10일   성지교회 2층 자택에서 운명


◦ 건국대 애학투련사건으로 구속되어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으로 115일 만에 출소

- 집에 돌아온 후 고문 후유증을 호소했으며, 이로 인해 1987년도 학기를 간신히 마치고 휴학

- 관련인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자결한 것으로 보고 있음

 

저희는 학교 생활을 하면서, '곽현정' 선배님의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선배님에 관한 이야기가 저희한테 까지는 전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분명한 '존재'를 만났고, 간단하게 적힌 약력 속에서 그 존재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온 몸에 전율이 이는 듯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열사'가 아닌, '존재'와 만난 것입니다.

 

곽현정선배님.jpg

한신대 신학과85학번 곽현정 선배님

 

 

3. 열사여야만 하는가?

 

곽현정 선배님을 열사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역시 굳이 선배님을 열사라 부르지 말자고 했습니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라는 이름이 진정한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언니" "누나"라고 부를 때, 선배님과 진실되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만났습니다. 국가와 군대의 폭력의 오물을 온 몸에 뒤집어 쓰고 저항했던, 결국 떨어진 꽃잎처럼 짓밟히고 말았던, 조금도 '승리'를 엿볼 수 없는, 열사에게서 느껴지는 '장렬함' 따위는 없는, 한 존재를 만났습니다. 이사야서의 '고난의 종'이 떠올랐습니다.

 

 

4. 하루라도 미뤄서는 안 된다!

 

물론 85학번 선배님들을 중심으로 곽현정 선배님은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배들을 통해서, 30년의 시간 동안 후배들에게 기억되거나 전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희는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열사'는 그렇게도 챙기고, 기억하면서, '근현대사'는 그렇게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 '존재', 한 '사람'은 잊었던 저희가 미웠습니다.

"추모예배 하자."

비록 선배님의 기일인 4월 10일이 하루가 지났지만, 저희가 이렇게 극적으로 선배님을 만나고서도 하루라도 선배님의 존재가 한신 교정 안에 다시 서는 날을 미룬다면, 저희의 죄는 더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예배를 준비했고, 최대한 많은 학우들의 참여를 조직하여, 바로 오늘 4월 14일, 선배님의 추모비 앞에서 추모 예배를 열게 되었습니다.

 

추모예배.jpg

 

 

5. 1시 15분, 115번의 징소리, 115일

 

추모예배는 처음부터 징소리로 시작됐습니다. 시간도 애매하게(?) 오후 1시 15분으로 잡았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선배님께서 옥고를 치르셨던 '115일'의 고통을 기억하고 나누자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부름으로 징을 '115'번을 침으로서 선배님이 보내셨을 115일, 하루하루를 저희 안에 새기기로 했습니다.

115번의 징울림과 묵상으로, 드디어 후배들이 주관하는 선배님의 추모예배가 시작됐습니다. 115번의 징울림은 저희의 망각과 나태함을 일깨우는 듯, 저희 가슴을 마구 후벼 팠습니다. 한신대 교정 한복판에서 선배님의 115일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6. 많은 참여, 많은 공감.

 

추모예배에는 놀랍게도 하루 전에 추모예배 허락을 받기 위해 연락을 드렸던 선배님의 어머님, 박영희 어머니께서도 먼 길로부터 와 주셨습니다. 또 저희의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된 한신대 총학생회장도 참석해 '건대항쟁'을 중심으로 추모 발언으로 연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올해 신학과에 입학한 많은 새내기들이 참석했습니다.

함께 모인 우리는 선배님의 삶과 고난, 그리고 저항을 기억하고, 그것을 계승하여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학우들이 선배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7. 우리가 새로 찾은 '이름'

 

참석한 저희는 모두 이제 기일에 맞춰 매년 추모 예배를 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그 이름과 삶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해지고 있는 국가와 군대의 폭력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고, 앞으로도 우리는 선배님의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한 뜻과 삶을 계승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새로 찾은 '이름'.

그것은 '역사'도, '주의'도, '열사'도 아닌, 오늘 우리 곁에 다시 살아난 한 '존재', 우리의 언니와 누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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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민중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이름'을 찾자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리워지지 않는 이름, 스스로 찾지 못한 이름을 함께 찾자는 신학이 곧 민중신학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존재'가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저희 신학의 임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의 추모예배는 바로 그런 생각으로부터 진행 되었습니다.

'이름'이 이름되게 하는 것, '존재'가 존재하게 하는 것.

 

그것을 위한 신학, 앞으로 참 많은 공부와 실천, 그리고 기도가 필요함을 느낍니다.

 

 

글쓴이 : 한신대 민중신학회 김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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