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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기와집>
<빨간 기와집>
빨간 기와집
가와다 후미코 지음, 오근영 옮김
꿈교출판사·1만4800원
‘빨간 기와집’은 무엇인가. 이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한 여성이 통과한 간난고투의 삶의 기록. “그의 인생을 정확하게, 극명하게 재현하고 싶다는 깊고 간절한 바람을 지녔”던 한 일본 여성의 양심과 집념의 소산이기도 하다.

작가 가와다 후미코가 배봉기(1914~1991)를 처음 만난 건 1977년 겨울. 마지막은 1987년 여름이다. 10년에 걸쳐 거듭한 만남은 70여 시간의 녹음테이프로 남았다. <빨간 기와집>은 배봉기의 삶을 ‘봉기’ 혹은 ‘봉기씨’라는 3인칭 주어를 내세워 서술한다. 구술에 기초한 생애사이지만, 읽노라면, 가와다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료 조사와 취재를 했는지 행간마다 느낄 수 있다.

배봉기는 최초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자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재귀속되면서 불법 체류자로 강제 퇴거 대상이 되었고 체류허가를 얻기 위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위안부로 오키나와에 끌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1943년 “과일이 지천이어서 나무 밑에 누워 입을 벌리면 절로 바나나가 떨어지는 곳”에서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열차에 올랐다. 그곳에서 그는 다른 여섯명과 함께 ‘빨간 기와집’으로 옮겨졌다. 일본군대가 운영하는 위안소였다.

<빨간 기와집>은 일본에서 1987년 출간돼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증언은 그 뒤 김학순을 비롯한 국내 피해자의 잇단 증언을 촉발했다. 한국에선 1992년 출간된 바 있으며, 이번에 새 번역으로 독자를 찾아왔다.

지은이가 구술을 듣던 1977~87년 배봉기는 “구멍과 틈새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 얇은 판자벽”을 한 한평짜리 오두막에 살았다. 이마와 눈두덩에 잘게 오린 파스를 잔뜩 붙여 통증을 견뎠다. 파스를 자르다 “그 가위로 내 목을 찌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그 충동을 누른 것은 혹시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배봉기의 고향은 흥남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충남 예산이다. 책의 마지막은 지은이가 그 고향을 찾아가 두살 위 언니를 가까스로 만난 이야기다. 50여년 전 여섯살 동생과 헤어진 뒤 한번도 보지 못한 언니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동생 소식은 모르는 게 나을 뻔했어요.” 배봉기는 “꿈에서 그리운 고향을 만나곤” 했지만, 함께 가보자는 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언니를 만나고 온 지은이에게 “건강하던가요?” 하고 묻고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내 고향에 갔어도 언니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자매의 말을 전하며 지은이는 이렇게 쓴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온 가족, 이 늙은 자매의 절망을 내가 감히 추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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